시드니 셀던 - The other side of midnight (배반의 축배, 깊은 밤의 저편)
할 이야기가 엄청 많은데 일단 제목부터.
원제는 The other side of midnight인데 내가 읽은 건 오늘이라는 출판사에서 '배반의 축배'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번역본이었다. 왜 제목을 저런식으로 번역했나 하고 책날개를 봤더니 원제가 이상하게 다 바뀌어있더라; 예를 들어 If tomorrow comes은 그날을 위하여로, The naked face은 당신의 가면으로, Bloodline은 화려한 혈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옛날에 전집으로 읽었던 책의 제목은 원제를 살려서 각각 그날이 오면, 벌거벗은 얼굴, 혈통으로 제목을 붙여놨는데(그리고 이 책도 이미 90년도에 '깊은 밤의 저편'이라는 아주 괜찮은 번역된 제목이 붙어 있었다) 여기 출판사는 왜 이런지 모르겠네. 다섯글자 강박관념이 있나 하기엔 (다섯 자 제목이 많긴 하지만)그런 것도 아니고. 원제랑 전혀 다른 제목을 붙여놔서 시작부터 뭐야 싶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그랬나라고 하기엔 1쇄 출판일이 90년도인데요. 그럼 아예 영어제목 그대로 내시등가 왜 원제를 햏들 맘대로 바꾸셨소.
하튼 이 책은 단권인데 페이지 수는 580페이지 가량으로 두꺼운 분량이었다. 나는 어릴적에 집에 있던 세계명작전집(?)으로 시드니 셀던을 처음 접했었다. 물론 꼬마애들 대상은 아니고 어른들 읽는 전집이었는데 집에서 그 전집을 읽는게 나밖에 없었던걸로. 암튼 시드니셀던이 재밌어서 고것만 쏙쏙 골라읽은 기억이 난다. 혈통, 내일이 오면, 벌거벗은 얼굴 전부 그때 읽었던거.
그리고 시드니 셀던은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된 거다.
사실 작년 휴가때 간만에 시드니 셀던 재탕해볼까 하고 내일이 오면을 읽었는데, 내가 읽은게 되게 옛날 버전이어서였는지 문체도 되게 올드하고....뭐랄까 사건 풀어나가는게 좀 너무 허술해서; 내가 생각하던 시드니셀던이 아니야 ㅠㅠ 힝 하고 좀 실망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이거 빌리면서도 살짝 걱정했던게 사실.
하지만 내 모든 예상을 빗나가 이 책은 개꿀잼 핵꿀잼!!!! 이었다. 더이상 소설이나 만화조차 거의 보지 않게 된 후로 영화로나 간간히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접하는 나에게도 아직 '재밌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이 남아 있구나 싶어서 너무 기뻤다. 메말라버린 땅에 내린 단비같은 존재였달까ㅋㅋ
아, 번역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책을 도중에 집어던지고 원서를 보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취미활동에 부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서일 뿐이었다. 읽으면서 존나 몇번이나 짜증이 났는지 모름. 예를 들어
- 관객은 안목이 높아져 커튼콜에 응해 그녀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p.200)
- 그들은 비가 그치고 싸늘하긴 하지만 상쾌한 밤이었다.(p.200)
고대로 친 거다. 나는 해외소설 번역 출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기본적인 윤문이라는 것도 하지를 않나? 사실 책 첫페이지 첫문장부터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는데 참나 읽는 내내 가관이더라. 오귀스트 랑숑은 갑자기 엘레니콘 랑숑이 되지를 않나. 그래서 이사람 퍼스트네임이 오귀스트인지 엘레니콘인지 난 아직도 모른다. 아, 30페이지의 "짖어대는 개는 물지 않는다."에는 (행동이 말보다 훨씬 점잖다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역주도 달아놨던데 확실해여???? 이게 최선이에여?????????
암튼 원제 이상하게 바뀐거랑 저런 형편없는 문장들에 너무 짜증이 나서 다신 이 출판사 시드니 셀던 시리즈는 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빡친건 여기까지.
그리고 내용 감상.
아, 정말 ㅠㅠ 앉은자리에서 한번 일어나지도 않고 다 읽어버렸다. 위에 빡쳐한 문장들은 그냥 번역기 돌린셈 치고 보는데 스토리에 빨려들게 하는 흡입력이 정말 어마어마했음. 등장인물 유소년기 설명하는 앞의 한 50페이지? 정도만 넘기면 진짜 페이지 훅훅 넘어가게 된다. 핵존잼. 핵꿀잼. 과연 시드니 셀던느님이시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이 시드니 셀던 출세작이자 최고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라더라. 얼마 전 내일이 오면 다시 읽으며 느꼈던 내용 진행상의 허술함도 거의 안느껴졌다. 아마 내일이 오면의 배경은 80년대고 이건 배경이 40년대라서 그런듯? 확실히 현대에서 멀어질수록 리얼리티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것 같다. 내가 그 시대를 안살아봤으니. 물론 역사덕후들이 역사소설을 볼때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ㅋㅋ
암튼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진짜 대박! 그리고 출간된 시점(70년대) 생각하면 진짜 ㅋㅋ 이런 자극적인 막장서스펜스핵꿀잼소설도 없었겠다 싶기도. 어릴땐 참 야하다 싶었던 시드니셀던 특유의 성애 묘사(?)도 지금 보니 걍 픽픽 웃고 넘길 수준이고예. 오히려 눈길을 끌었던 건 세 주인공이 파멸해 가면서 점점 미쳐가는 심리상태를 묘사한 부분이었다. 제일 몰입했던 대목은 캐서린이 살인공모하는 노엘과 래리를 현장에서 보고 밤중에 달아나다가 호수에 빠지는 부분. 무매력녀가 질 나쁜 매력남에게 꼬이면 인생 어떻게 전부 말아먹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거의 소설의 절정 부분인데 이게 너무나도 섬뜩했다.
그러고 보니 노엘이랑 래리도 총살당할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지. 래리는 인생에서 제일 빛나던 시기인 전투기를 탔을때, 그리고 노엘은 아버지가 어릴 때 둥가둥가하던 때의 세계 속에서 죽어간다. 웃긴건 두 사람 모두 마지막 순간에 서로가 안중에 없었다는거. 년놈들 잘 뒤졌네 싶다가도 노엘은 불쌍한 면이 없지 않더라.
암튼 보면서 캐서린과 노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케 되나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결국 하나는 죽고 하나는 폐인 됐네여. 하지만 에필로그(이것도 기깔났다규 ㅠㅠ 캐서린 살았을 줄이야 ㅠㅠㅋㅋ)의 암시를 봤을때 캐서린은 정신 차렸을 확률이 있고. 어떻게 그 외진 그리스 섬의 음산하고 폐쇄된 수도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호되게 인생 배웠다셈 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데미리스에게 들켜 쥐도새도 모르게 죽임당하지 않으려면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겠지만. 아, 데미리스는 얘 안죽여도 되려나. 이미 노엘과 래리가 뒤졌으니 캐시까지 죽일 요인은 없기도 하다 싶네.
음, 스토리의 가장 구멍이다 싶은 부분은 일단 노엘이 왜 (결국은 본인 파멸의 원인이 되는) 데미리스의 정부가 되었나 하는 점이었다. 이미 프랑스 톱여배우고, 돈도 많고, 데미리스같은 거부에게 붙지 않아도 스스로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아니면 자기가 그냥 전용기 사서 래리를 고용했어도 되자나. 고티에 정도에서 멈추고 본인의 재력과 권력으로 래리를 차츰차츰 옭아매 가는 방법이면 충분했을텐데 왜 빡센 데미리스같은 노인네에게 붙어서...결국 뒤지나여....7년동안 세운 복수 계획이 고작 프랑스 최고 여배우가 되고->자가용 비행기 있는 갑부의 정부가 돼서->래리를 그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로 고용한다 였던 건가여.....하 진짜 한숨나오고요??....
암튼 노엘은 그렇게 예쁜 미모를 타고 태어났는데 처신이 너무너무 아쉬웠다. 일단 밑바닥부터 성공하기까지는 늙고 살찌고 추하고 못생긴 남자들 좆을 빨아줘야 했다 할지라도, 이젠 성공했자나여. 그럼 일렬종대로 미소년부터 쫙 세워놓고 시중들게 하면서 맘껏 인생 누리고 여왕처럼 살면 됐을텐데. 대체 왜 래리같은 정신병자 시발롬때문에 인생을 말아먹나여. 대체 데미리스 정부는 왜 된건가여. 똑똑하다면서 머리 왜케 안돌아갔던 건가여. 처음엔 아 노엘 진짜 핵매력녀 되는구나 싶었는데 결국 그 매력(이자 생명력)의 근원이었던 한 남자를 향한 집착때문에 인생 말아먹었구나 싶어서 씁쓸. 래리를 잊었다면 노엘은 정말로 화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무매력녀의 정석은 사실 캐서린이지라. 철벽녀로 자란 게 문제가 아니고, 얘는 여자가 인생 똑바로 살아가야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금과옥조를 몇 번이나 무시했다. 바로 '남자와 나 자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나를 선택하라'는거. 하지만 얘는 괜찮은 남편감도, 본인의 커리어도, 미래도 다 버리고 래리에게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종국엔 처절하게 배신당했다. 사실 캐서린 망가지는걸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지만 쌤통이다 싶기도 하더라. 지팔자 지가 꼬는데 대체 누가 구제해주냐고. 착란상태에서 호수에서 배 타고 그때서야 윌리엄 프레이저 떠올리면 뭐하냐고여. 니 인생은 끝장이라고여.
래리는....뭐 말할것도 없지. 매력적인거랑은 별개로 결혼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전시 같은 특수상황이 아니라면 사회생활도 힘든 사람. 차라리 가수나 배우 같은 예술가 계열로 나갔으면 모르겠는데, 얘는 여자들이 가까이해선 안되는 인물. 솔직히 캐시랑 처음 헐리우드에서 만나는 대목은 매력터지긴 했는데 그뿐이다. 캐시가 조금만 절제력이 있었다면 래리는 하룻밤 잤잤상대로 두고 윌리엄과 사귀다가 적당히 헤어지고 괜찮은 남자를 새로 만났겠지. 근데 그렇게 안되게 만들었으니 이놈도 치명적인 매력남이긴 한듯. 테토 극히 높은 매력남의 표본같다.
아 보면서 이야기 개꿀잼인거랑은 별개로 좀 씁쓸했던게 ㅋㅋ 캐시랑 노엘은 20대 꽃띠 처녀들인데 왤케 늙탱이들만 만나냐구여. 괜찮은 남편감이라고 쓰긴 했지만 윌리엄도 사실 존나 사오십대 희끗희끗한 아저씨고, 아르망도 아저씨고 데미리스는 걍 할배자나여 ㅋㅋㅋㅋ 아 시발 다시 생각해도 노엘이 왜 데미리스 정부됐는지 모르겠네 ㅋㅋㅋㅋㅋ 아 진짜 아무리 돈많아도 늙은 할저씨들이랑 어케 잤잤을 할생각을 ㅋㅋㅋㅋㅋㅋ 아 개싫어. 옛날에 쓰여진 소설이라 그런건지 하튼 여자남자 나이차 너무 많이 나는거 좀 역겨웠다. 내가 연하남 취향이고 슈가대디같은거 극혐해서인지 ㅋㅋ
그러고 보니 한때 80년대 할리퀸 좀 본적 있는데 존나 여주는 20대 극초반인데 남자는 30대 중후반인경우도 허다했었지. 시발 싫다구여 ㅋㅋㅋㅋㅋ 난 나보다 어리고 파릇파릇 탱탱한 연하나미가 좋다구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결론은 핵꿀잼 개꿀잼. 번역상태는 히익. 시드니셀던 다른 작품 또 보고싶다....!
* 책 카테고리 신설했다. 앞으로 (만화 제외한) 책감상은 여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