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kim11 2023. 4. 28. 22:04

요즘 은근히 고전을 먹고 있다 ㅎㅎ

콘텐츠가 너무 범람하니 오히려 뭘 읽고 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 끝에 레전드로 땅땅 인증받은 작품들을 골라 보게 되는 거다.

 

암튼 폭풍의 언덕도 언젠가는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 읽었네. 읽은 건 문학동네 버전이었다.

달과6펜스는 솔직히 노잼인 편이라 읽기 영 빡셌고 책장 잘 안넘어갔는데 폭풍의 언덕은 존나재밌어서 이틀동안 퇴근해서 술술 다 읽어 버렸다. 생각보다 더한 매운맛...!

아래는 캐릭터별 감상.

 

 

캐서린 언쇼

오...미쳤네 성질과 인성 무엇?...와꾸가 좀 덜예뻤으면 삶이 덜 기구했겠지만 오래살았으면 주변사람들 너무 힘들었을듯;;

인성이 진짜 엉망진창이었다. 리터럴리 미친자인데, 어떤 느낌이냐면 그 백화점이나 마트같은데서 드러눕는 애새끼 보는 기분. 여주인데 보기가 힘들어...텍스트만 보는데도 악쓰는게 느껴져서 시끄럽고 너무 짜증남... 물론 얘보다 얘 딸이랑 이사벨라가 더 짜증났지만! 

 

 

히스클리프

어? 싸이코패스다! 아니 이건 싸패라고 하기엔 캐서린한테 너무 집착하고 아무튼 예...사랑인건 알겠는데...너무 미쳤^^;; (칭찬아님)

대부가 그 후 나올 모든 마피아 컨텐츠를 영원히 결정지어 버렸듯 얘도 전세계 모든 집착남주의 캐논같은 존재인건 너무 잘 알겠는데, 얘는 20세기에 나온 컨텐츠인 대부와는 달리 뭐랄까...생각보다 안 멋있다. 사람이 영 비호감임;;

현대의 정제된 디저트처럼 먹기 편하고 선 지키는 남주 맛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얘의 집요함과 모럴리스가 추하게 발현되는게 너무 꼴보기가 싫었고요...캐서린 죽고 중반부부터 복수하는건 아예 남주가 아니라 이뭐 진짜 구린 악역같이 느껴졌다;; 린턴(아들) 뺏어오고 캐시(딸) 가둬두면서 이집안 저집안 재산 다 차지하는거 진짜 최악. 이사벨라랑 캐시 패는것도 시발 어따 손을대?

남주가 복수를 하는데 사이다가 아니야. 멋지지가 않아. 영 추하고 역겨웠다.

물론 1840년대 책의 남주를 지금 잣대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건 너무한 처사일 거다. 히스클리프에서 시대상 안 맞는 부분들만 걷어내면 그게 바로 현대의 집착남주겠고요?

오로지 여주에게만 절절 끓고 집착하는 남주의 웅장한 원형을, 200년간 살아남은 불멸의 캐릭터를 목도한 걸로 만족을. 

 

 

에드거 린턴

히스클리프가 흑발집착남주의 원형이라면 에드거는 다정섭남의 원형이 되겠지 ㅋㅋㅋ 그리고 나 스스로 잘 알다시피 난 명백한 섭남취향이다.ㅋㅋㅋㅋ 한국 로맨스 컨텐츠들은 유독 극단적인 왕도 남주 성향이라(요식업종 뭐 하나 흥하면 우르르 따라 개업하는거랑 똑같은 이유겠지) 난 잘 못먹음. 흑흑흑 ㅠㅠ

암튼 에드거도 원형이라면 원형이라 요즘 나오는 섭남들보다 들 멋지긴 하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에 대면 진짜 매력이랑 남성성 야성미 떨어져서 애잔할 정도. 남성성 야성미 이런거에 안 끌리는 나조차도 어머 애잔해 벨루다...하고 느낄 정도니 말 다했쥬 ㅠㅠ 아무리 멋져도 남주에 비해 너프가 될수밖에 없는 섭남의 숙명이겠지만.

뭐 교양있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리고 매력이 부족해서(그리고 캐서린이랑 히스클리프가 워낙 미친자들이라) 사약 먹는 느낌은 별로 안 났다. 다행쓰. 끗.

 

 

이사벨라 린턴

이사벨라의 행적을 읽는동안 하나의 문장만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병 형신이야?"

진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여캐였다. 헛된 사랑에 눈멀어서 지팔지꼬하는거. 진짜 병형신의 전형^^

심지어 새뢩의 도퓌~를 하고서야 지 인생 좆된거 깨닫고 엘렌한테 편지쓰는거 무슨 능지예용;;; 진짜 책 읽다 고비가 몇번 왔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사벨라 편지 대목이었다. 네이트판 결시친에 지팔지꼬 글 올리는 고구마 답답이 억지로 보는 기분;

그러고 보니 여기 등장하는 세 아가씨 캐릭터(캐서린, 캐시, 이사벨라) 모두 애새끼같고 말 더럽게 안듣고 지팔지꼬를 하네. 시대상?...예 감안해야겠쥬...근데 감안하고도 얘네 너무 짜증스럽...하...

 

 

헤어턴 언쇼

결국은 진남주? ㅋㅋㅋ 그나마 이 소설의 위너?ㅋㅋㅋ

얘는 처음부터 잘생겼다는 묘사도 여러 번 나오고 나중엔 천하지만 뭐 괜찮은놈이네 어쩌네 하며 히스클리프 입까지 빌려 칭찬을 해서 그저그런 조연으로 안 끝날것 같았다. 얘도 친아빠랑 히스클리프 두 영남충 새끼들때문에(ㅋㅋ) 인생 참 기구했는데 다행히 재산도 잘 차지하고 캐서린 린턴이랑 잘 돼서 다행. 그래 느그라도 행복하게 살어...

 

 

캐서린 린턴

2권 읽으면서 책장 덮고싶었던 넘나 큰 이유중 하나^^! 엄마 빼닮아서 말 절대 안듣지. 엄마처럼 지랄발작은 안하지만 그래도 착실히 (히스클리프의 빅픽쳐대로) 엇나가 결국 폭풍의 언덕에 갇히는 며느리가 된다.

자꾸 폭풍의 언덕이랑 린턴 히스클리프한테 관심가지는거 보면서 하지마! 하지말라면 좀 하지말라거! 야임마!! 하고 얼마나 빡쳤던지 하... 아직도 엘렌 아팠을때 조용히 집빠져나가 린턴 보러 간거 생각하면 짜증이...!

암튼 엄마의 도라이끼는 좀 빠지고 헤어턴이랑은 잘 돼서 다행쓰. 느그는 행복하게 잘살그라잉

아 그리고 히스클리프가 혹시 얘한테도 반하나? 하는 더러운 막장을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럽라는 서지 않았다. 엄마를 별로 안 닮았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그래서인가. 오히려 헤어턴이 더 캐서린을 닮았다고 ㅎㅎ

 

 

린턴 히스클리프

아유 얘는 2대째의 섭남이라면 섭남인데...얘도 진짜 뒤통수 개쎄게 한대만 치고싶은 애새끼였다.

폭풍의언덕에 간 캐시한테 아프다고 징징거리는거 볼때 히익스러웠는데, 캐시가 이 꼬라지부리는걸 받아주는거에서 더 히익함. 매력남캐라면 절대 해선 안될 유약함 겁먹기 여자배신하기(캐시)를 3단콤보로 쏵다 해먹고 단명해버렸네.

히스클리프한테 인터셉트 안 당하고 티티새 지나는 농원에서 평화롭게 자라났다면 다른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이 소설이 아니게 됐겠쥬 ㅋㅋ

 

 

엘렌 딘

이 소설의 화자. 그리고 작중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엘렌의 입을 통해서 보는 거다. 그래서 중간에 본인이 되게 멋지거나 똑바른 판단을 했다는 식으로 말하면 속으로 진짜임? 이라는 의문을 한번씩 품으며 봄 ㅎㅎ

워낙 상식인이기도 하고 신임이 두텁기도 하고 주인공들이랑 오래 같이 지내기도 해서 캐서린이나 에드거는 물론이고 미친갱이 히스클리프도 엘렌한테는 함부로 못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녀라 작중 캐릭터들의 엇나가는 짓을 막지는 못함.

말년에는 나름 재산도 쌓고 잘 지내는거 같던데 평지풍파 안겪어서 다행이에용...잘 살다 가셨길

 

 

록우드

액자식 구성을 위해 초반 등장하는 양반. 폭풍의 언덕에서 그 모욕을 당하고도 캐시(딸)한테 들이대지 못한것을 좀 아쉬워하던데 그런거 보면 캐시나 엄마 캐서린이나 얼마나 드럽게 예뻤는지 짐작이 간다.

 

 

조지프

이 할배 빼먹을뻔했네. (사실 안써도됨) 소설에서 원탑 비호감이고 말도 섞기 싫을 부류의 인간이었다. 근데 왜 결말까지 폭풍의 언덕에 있는...?^^

딴소린데 작중에서 제일 더러운 변태였을거같음. 원래 주둥이로 신 과하게 찾고 엄숙함이 어쩌고 나불대는 것들이 젤 추잡한거 아니겠읍니까? 까보면 졸라...말을 줄이겠읍니다.

 

 

+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아보자면

역시 작품 초반, 히스클리프가 록우드의 비명소리를 듣고 캐서린 방으로 달려왔던 거. 그리고 록우드 내보내고 캐서린한테 들어오라고 창문 열고 오열하던 거.

이건 뭔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진짜 절절하게 다가왔다. 개 불친절하고 첫인상 개판인 양반이 저렇게 표정 바뀌고 울다니...머선 일...?

했는데 나무위키 보니 이거 되게 유명한 장면인가봉가 ㅎㅎ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같은듯 ㅎㅎ

 

그리고 커플들이 너무...캐서린-히스를 제외하면 딸내미 캐시-린튼, 딸내미 캐시-헤어튼 전부 사촌지간이라 디스거스팅하긴 했다. 찾아보니 영국은(혹은 저시절 영국은) 사촌까지는 결혼이 된다고...어...유전병 괜찮아요?

예전에 백년동안의 고독 읽으면서 이건 심지어 사촌보다 더한 근친인데다 내용도 치정멜로가 아니라 고독같은 걸 다룬 거여서 정서적으로 힘들었는데 폭풍의 언덕은 그나마 로맨스 색채가 강해서 흐린눈으로 보긴 봄..

 

아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너무 별 명확한 이유도 없이 자꾸 죽어나가가지고 ㅎㅎ

너무 막 죽이는거 아닌감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나요 병명도 애매한디^^; 했는데 작가 가족들이 죄다 단명했더라...(오염된 식수 먹은 걸로 추정된다고 함 feat.나무위키) 하긴 저시절엔 단명이 흔했겠지 병명이 뭔지도 몰랐을테고 그냥 쇠약해져서 죽는다고밖에 표현이 안됐것지...

생각해보니 참 의료기술이 많이 발달한 세상에 살고있구나 ㅎㅎ

 

암튼 재밌게 잘 읽었다! 고전치고는 놀라울만큼 흡입력 있었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