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던 개꿀잼 영화
천만영화는 뭐가 됐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관객들 수준 졸라 높다고 생각하고요.
아무튼 천만을 넘어 천백만이 됐는데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연말까지 써야되는 공짜표도 있어서 보러 갔다.
- 영화가 한시간쯤 지난 시점부터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좆같은 영화, 노잼 영화를 봐도 이렇게 강렬한 충동이 든적이 없었다. 너무 재밌고 너무 쫄깃하고 너무 흥미진진한데 이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라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 나는 정치에 그닥 관심이 없고, 열올릴 생각도 없다. 굳이 분류하자면 좌파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우파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는게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조금 과장해 스너프 필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중간중간 눈을 감고 버텼다. 집에 가고 싶었다.
- 그토록 괴로웠던 건 내가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평범한 대중이라서겠지. 내가 영화관에서 보는 종류의 영화들, 미션임파서블이나 마블 시리즈를 위시한 블록버스터, 돈을 처바른 헐리웃 영화들은 결코 좆같이 끝나지 않는다. 약속된 해피엔딩을 보고 행복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서는 게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게 안 돼.
- 육참총장도 수경사령관도 너무 그린듯이 훌륭해. 선역이야. 근데 그들의 적인 전두광 이 대머리새끼와 노태건 이 불륜남(ㅋㅋ)새끼가 대통령이 되어 천수를 누리고 떠난 세계선에서 나는 살고 있다. 결말을 알아. 저 훌륭하고 반듯한 군인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 훌륭한 가치들이 어떻게 뭉개지는지 아니까. 실시간으로 그걸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웠던 것 같다.
- 이태신이 시발 너무 멋있었다. 정우성이라는 와꾸를 입어서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그냥 너무 멋있었다. 이 영화의 영웅. 헐리웃이었다면 캡틴아메리카처럼 승리가 당연했을 군인. 예전에 이분 공부 잘하는 아드님이 석연치않은 죽음을 당했다는 후일담을 봐서 더 마음이 아렸다...
- 비록 당시는 패배했지만 서울의 봄을 천만명이 넘게 봤으니 이 나라의 나같은 근현대사 알못들도 이제 당신을 기억할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국사 1등급을 놓친 적이 없지만 대학가는 데 별로 안 중요했던 근현대사에는 무지했다. 그래서 이런 분이 계셨던 걸 잘 몰랐다. 죄송하고, 이제 영화로나마 알게 됐네. 이런 분들이 계셨어서 한국이 이만큼이나 왔구나 싶기도 하고. 먹먹하다.
- 전두광은 빌런이지만 영화에서 대단히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씨발놈이건 뭐로건 역사에 굵게 남으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황정민의 광기어린 연기까지 더해져서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평범한 이들의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선 자기확신. 절대악처럼 느껴졌지만 그 삶의 태도만은 새겨야 한다. 패기를 가지고 개썅마이웨이하며 내 삶을 헤쳐나가야지.
- 짜임새와 연기가 모두 대단히 훌륭한 영화였다. 나는 스케일 큰 블록버스터가 취향이라 한국영화를 영화관에서 잘 안보는데 (심지어 마지막으로 본게 천박사여가지고 ㅆㅂ 한국영화 더 정떨어졌기도 했음...^^), 그래도 퀄리티 뛰어난 영화를 봐서 충족된 기분이다. 정신이 힘들어서 두번은 못보겠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