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우연히 클램프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마도 스ㄹ드나 X 돌아다니다 본 듯?...)

보니까 벌써 전시 시작한지 한달도 더 됐더라.

갈까말까 살짝 고민하다가, 아니 클램프 원화를 안 봐? 이러고 예매했다.

마침 20일이 평일이지만 나는 쉬는 날이고, 후기 보니 인기도 많은 듯해서 이날 개장 시간에 맞춰 오픈런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개장 11시면 넉넉하네? 충분히 푹 자고 일어나도 되겠네 싶었다.

 

근데 전날 밤, 자려다가 급 놓친 로ㅎ님 콜로소 라이브 강의가 떠올라서^_^...들어가봤더니 영상이 아직 공개돼있어서 그거 또 2시간짜리 보느라(2배속으로 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늦게 잠들었다.

그래서 오픈런은 포기하고 1시간 늦게 가는걸로 알람 맞춰놓고 잠들었다.

그리고 담날 일어나보니 비가 추적추적. 예보는 하루 종일 비였다.

 

날씨는 오히려 좋아긴 했다. 평일에 날씨까지 궂으면 사람 더 없겠네? 싶어서였다. 

여하간 비바람 뚫고 다녀온 후기.

 

 

티켓 받고 입장하자마자 한 컷.

뒤의 건 티켓은 아니고 걍 학산의 홍보용 큐알이 담긴 종이였고, 저 포토카드(재질은 걍 종이였음)? 같은 건 요일마다 다르게 배부되는 듯했다. 내가 받은 건 성전의 아수라.

하 ㅋㅋ 아수라 진짜 얼마만이냐. 반가워. 수십년만에 만난 캐릭터인데 지금 봐도 아름답다.

 

아무튼 들어가면 컬러 일러스트들부터 시작한다. (아쉽게도 컬러 작품들은 거의 전부 촬영 금지여서 못 찍음)

거두절미하고, 실제로 본 클램프의 일러스트들은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답고 비현실적이었다.

 

디지털 아트로도 구현하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고 유려한 작풍인데, 이걸 심지어 디지털도 아닌 컬러 잉크나 마카 같은 걸로 종이에 그렸다는 게 정말로 믿기지 않았다.

 

그림의 세세한 필치나 인간다운 손길(?)을 느끼고 싶어 최대한 바싹 붙어 봤지만, 아무리 붙어서 뚫어져라 봐도 흠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인쇄본 그대로, 그냥 완벽한 일러스트일 뿐. 종이의 질감이나 귀퉁이의 희미한 오염 같은 흔적만이 이게 진짜 그림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작업 순서가 어떻게 됐을까? 종이 위에 그리는 건 레이어도 없으니 훨씬 까다로울 텐데, 그럼 컬러링은 명도 단계에 따라 계산해서 종이 비울 곳은 비우고 칠한 걸까? 아니 컬러가 근데 엄청 세밀한 부분도 선화를 1도 삐져나가지를 않았네.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게 사람이 손으로 그린(칠한) 거라고? 이게 가능해? 의 연속.

 

클램프 화풍의 가장 강력한 특징 중 하나가 말 안되는 밀도인데, 이 미친 밀도를 컴퓨터로 그린 것보다도 완벽하게 구현한 일러스트들을 실제로 보니 진짜 너무 충격적이었다.

 

게다가...게다가 대부분 알고 있는 그림들이었다.

컬러 작품들은 대체로 연도 순으로 나열돼있는데, 그럼 첫빠따 작품은 뭐다? 성전이다.

내가 처음 클램프를 알게 된 작품이기도 하고. 처음 본 게 아마 초등학교 4학년쯤 됐던 것 같은데 ㅎㅎ

다시 본 건 수십년만인데, 작품이 얼마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던지 일러스트 보니 하나하나 기억이 났다.

수십년만에 마주한 작품이 너무 반갑고, 그립고, 여전히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워서 벅차올랐다.

그 어떤 미술 전시회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물론 성전 뿐만이 아니다.

클램프의 90년대 작품들은 대부분 아주 잘 알고 있다. 클램프 학원탐정단, 도쿄바빌론, X, 20면상에게 부탁해, 이상한 나라의 미유키, 신춘향전 등등 (물론 카드캡터 사쿠라까지ㅎㅎ)

 

진짜 하나하나 보는데 다 알겠고...다 기억나고...너무 반갑고...의 반복.

 

 

컬러 일러스트들 정신없이 보고 나서, 드디어 사진 촬영이 가능한 흑백원고 구간에 진입했다 ㅎㅎ

클램프 학원탐정단 멤버들(아키라는 빠졌네 ㅎㅎ)이랑 성전의 용왕.

미쳤냐고 진짜 ㅠㅠ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이 난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캐릭터들.

 

성전 이 망할놈의 스토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게 용왕인데, 용왕 죽는 장면도 전시돼 있더라 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성전은 진짜 아수라랑 야차 빼고 등장인물들 다 죽였지. 어린 맘에 비극의 쓴맛을 제대로 본 작품이기도 했다.

물롱 일본만화의 잔인함을 처음 매콤하게 맛본 작품이기도ㅋㅋ 초반쯤 전투중에 적 장군? 배 터지면서 내장 보이는 씬이 있었는데, 어린 맘에 그거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ㅋㅋ

 

아 그리고 동성 럽라도 엄청 많았던 기억이 나네. (공식 아니더라도 너무 엮어먹을게 많은 그런...!)

지금은 비엘지엘 취향 아닌거 확고하게 알아서 거의 안 먹는데, 저때는 어 뭐지? 건달파왕이랑 소마 둘다 여자아닌가 왜 서로 좋아하지? 이 정도 생각으로 봤던 것 같다. 근데 멋모를때도 성전에서 그렇게 쏟아부어 준 동성럽라에 그닥 관심 없던 걸 보면 ㅋㅋ 사람 취향은 확고해...

그나저나 이 작품 지금 생각하면 대체 어케 19금 딱지 안 붙고 정발된거여 해적판도 키스신 검열하던 시절에ㅋㅋ

 

암튼 다 죽어 나가고 비극비극 처발처발이었던 성전과는 다른 컬러였던 클램프 학원탐정단. (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20면상에게 부탁해)

이쪽은 내 또래(!) 학생들이 주인공인 가벼운 현대물이라 또 다른 느낌으로 재밌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클램프 학원탐정단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등나무 요정 커플...! 남자애 이름 다 뭐시기였던 것밖에 기억 안나서 찾아보니 타카무라였네.ㅋㅋ

 

처음에 저 여자애가 피리 부는 거 보고 타카무라가 반했었나. 아무튼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여자애 등장씬이랑 '등나무 요정'이라고 표현된 것만은 기억에 남아 있다. 진중한 무도남+요정 같은 요조숙녀 커플 좋고요...!

그나저나 나무위키 보니까 등나무 요정은 심지어 유치원생이었네?ㅋㅋㅋ 왜 벌써 으른커플 느낌 나는거죠 니네 ㅋㅋ 

 

 

카드캡터 사쿠라! 빼놓을 수 없고요 ㅋㅋ 클램프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빵 터진 작품. 나도 당연히 아주 좋아했다.

심지어 몇년 전에 크로우카드 복각판이 나왔을 때 2개나 샀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소듕하게 소장중이고요...!

 

라떼는 정발판 이름이 체리였다. 유체리 너무 잘 어울리고요? 가히 슬램덩크의 강백호에 비견할 네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유도진이도ㅋㅋ 한국에서 인기 많을 잘생기고 멋진 오빠 캐릭터...! 그나저나 여기도 유에였나 청명이었나랑 엮였었네 ㅋㅋ

 

겉으로는 초중등 여학생 타겟의 마법소녀물인데, 이 작품에도 지금 생각하면 부적절한 커플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체리 학교 친구중에 남자 교사랑 사귀는 설정의(??? 이거 지금은 그냥 징역감인데;; 애초에 나오지도 못할 설정...!) 애도 있었고, 체리 엄마도 되게 어릴때...막 열일곱살 이럴 때 나이차이 상당히 나는 체리 아빠 만나서 집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소듕하게 기른 부잣집 딸이 나이차이 나는 남자 만나 집 나가면 부모 억장 무너집니까 안 무너집니까...!!

 

생각해보면 클램프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 당시 막 최고로 끌리거나 빠져들거나 그러지는 못했던 게, 아마 중간중간에 이렇게 내 입맛 아닌 설정들이 꽤 있어서였던듯 하다. 특히 럽라...나이차 너무 많이 난다거나 동성이거나 이러면 잘 안먹읍니다...

그나마 메인이 체리-샤오랑 커플이라 을메나 다행이었게요. 못 박아줘서 고맙읍니다 클램프 선생님들,,,

 

아무튼 카캡사쿠라는 애니도 방영됐었고, ost도 너무 좋았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플라티나라든지 크리스마스 노래라든지.

일본어 하나도 모를 때도 한글로 써진 발음을 외워서 흥얼거리던 기억이 난다. 오토모다치 코에오카케타라~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으면 너무 설레던 기억이.ㅎㅎ

 

 

다시 성전이네. 공작!

이 컷도 보니 기억이 나서 너무 반갑고 그랬네. 아마 성전에서 공작을 용왕 다음 정도로 좋아했던 것 같다. ㅎㅎ

희대의 복흑캐릭터ㅋㅋ 제로스에 빠져 허우적댔던 것도 아마 이 즈음이지 싶은데, 공작도 좀 비슷한 계열이쥬?ㅋㅋ 생글생글 웃는 복흑캐 여전히 사랑하고요...

 

살애였나 예전에 블로그에 감상문 올릴 때도 썼던 것 같은데 진짜 궁금하다. 얘네를 봐서 취향이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애초에 취향을 그렇게 타고 태어나서 얘네를 좋아하게 된 건지.

 

어쩌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길이기도 해서 즐거운 건지도 모르겠네.

 

 

클램프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레이어스! 한컷 넣어줘야쥬 ㅋㅋ

흑백 원고는 말로만 듣던 식자 붙인 흔적같은 걸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말로만 듣던 스크린톤 붙인 원고 실제로 보니...인쇄본이랑 별 차이 모르겠는디?;; 싶기도 ㅋㅋ 어릴땐 엄청 궁금했었는데.ㅎㅎ

 

레이어스는 만화책으로 보기도 한 것 같은데 그보다는 애니메이션 기억이 더 크다. 써니, 마린, 윈디.ㅋㅋ 만화책은 딴건 모르겠고 윈디 이름이 차선풍이었나로 번역됐던 기억이...해적판이었나 ㅋㅋ 그리고 써니는 오빠가 일곱명이었던 것도 기억난다...가 아니라 나무위키 찾아보니 3명이었네? 뭐지 내 기억력 ㅋㅋ

 

아무튼 써니 럽라가 맘에 좀 안 찼던걸로 기억하는데, 찾아보니 이글이라고 적대 세력쪽의 좀 (란티스보다 상대적으로) 예쁘장한 남자애랑 엮였으면 했던 모양이네 나ㅋㅋ 하 역시 취향은 변치 않고요...

 

그 외 다른 작품들도 많았지만 내가 안 봤거나 크게 관심 없는 작품들은 가볍게 보고 지나쳤다. xxx홀릭이라든지 쵸비츠, wish 등등. 아, 츠바사 크로니클도 꽤 지분이 컸는데 츠바사는 진짜 초반밖에 안 봐서 ㅋㅋ 20권 넘게 나오긴 했더라고.

 

이거 나름 사쿠라 샤오랑, 다른 캐릭터들도 나오는 대작인데 내가 크게 흥미를 못 느낀게...난 기존 캐릭터를 다른 세계관, 세계선에 등장시키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것 같다.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캐릭터가 특정 세계, 특정 스토리 안에서 완결지어지는 게 좋나봐. 그래서 비슷한 맥락에서 회빙환도 안 좋아한다. 그나마 회귀는 어찌저찌 봐준다 쳐도 빙환은 더욱 내 정서 아님;

 

아무튼 작품들 제목은 다 아는 것들인데, GATE7은 아예 초면이더라.ㅋㅋ 그래도 컬러 일러 너무 매력적이라 뚫어져라 봤네.

대부분의 작품들은 꼼꼼하게 봤지만, 설명에 '디지털 출력'이라고 돼 있으면 흥미가 확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다 ㅋㅋ 합법드러그였나 이 작품도 제목만 들어본 작품인데, 컬러 일러스트 아래에 디지털 출력이라고 써져 있더라? 흠...확식. (그리고 미묘하게 그 앞뒤 종이에 그린 작품들보다 별로였다. 디지털 작업이 어색해서 그랬던 것일수도 있지만ㅋㅋ)

 

그리고 최근에 그린 일러스트들도 봤는데 90년대의 날카로움은 사라졌지만 압도적인 밀도, 꼼꼼함은 여전하네. 아니 클램프쌤들 노안도 안 오세요?

진짜 신기할 지경이다. 내 기억으로 넷이서 같이 그리는 건 아니고 작화 담당은 모코나쌤 중심으로 한둘 정도였었던것 같은데...나머지가 어시(?) 역할을 한다손 쳐도 저 많은 작품을 그려내는게 가능한가? 어시를 엄청 여럿 쓰시나? 찾아보니 그것도 아닌모양인데. 쌤들 손목괜찮으세여?... 

 

 

전시 막바지에 장식되어 있던 조형물.

마지막에는 출간한 책들이랑 클램프의 인터뷰 같은 것도 있었는데, 보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 친구 4명이 함께 하며 돈을 왕창 버는 인생이란 어떤 기분일까.

진짜 너무 부럽고...대단하고...멋있고...

 

어릴때부터 나는 스스로가 절반 정도는 현생이 아닌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오고 있는데, 클램프의 작품들 마주하니 그 느낌이 좀 더 선명해졌다. 내 영혼은 여기가 아닌 피안(?? 뉘앙스가 좀 이상하긴 한데 ㅋㅋ 현생과 좀 반대되는 의미 정도임)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현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생을 포기한다고 피안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이곳이 아닌 먼 곳을 그리워하는 내가 있고, 클램프전은 반가운 추억과 함께 그런 나를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총 관람시간은 딱 2시간 정도.

사람은 생각대로 별로 없어서 꽤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굿굿.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라 ㅋㅋ 1020 에너지 넘치는 오타쿠들 노는데 나 같은 낡고 찌든 직장인이 가도 될까?...살짝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클램프 팬층이 그렇게 어린 편도 아니겠고, 뭐.

 

그리고 옷 안 산지 5년은 된 듯해서, 홍대같은 곳에 이런 옛날 옷(?)입고 가도 될까?...했지만 이 역시 기우였다. 딱히 주변을 세세하게 살피진 않았지만 다들 편하게 입고 있는듯 했고, 한번은 옆에서 좀 떠들길래 눈치주려고 곁눈질 했는데 코스프레 옷을 입고 있더라고...황급히 시선 돌렸읍니다. 낡고 찌든 직장인은 보기 힘든 광경이라 살짝 놀랐ㅋㅋ

 

굿즈는 다행히 사고싶은 건 없었다. 그나마 아르카나 카드였나 뭐 랜덤하게 들어있다는 그거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아예 다 팔리고 없는 것 같더라. 크로우카드 복각판 있음 됐지 ㅋㅋ 하고 나옴. 화집은 인터넷에서 사는 게 더 싼 것 같고, 흑백말고 또 무슨 프리미엄 버전(?)이 있는 모양인데 나중에 그거 일판으로 사면 되지않을까 싶기도 ㅋㅋ

 

여하간 비바람 뚫고 잘 다녀왔읍니다. 만족.

이게 1부 2부로 기간을 나눠서 진행하는 거였고 내가 본 건 1부인데, 볼만한 작품은 다 본 것 같아서 2부는 볼까말까 고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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