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ㅋ 유툽리캡에 문답까지 하고 또 쓰쥬?
근데 올해 제일 중요한 이벤트에 대해 안썼단말이지
31일에는 시간 안날거같아서 지금 씀
올해 집을 샀다. 인생 처음으로.
집, 부동산, 내집마련이라고 하면 진짜 밤을 샐만큼 할말이 많은데요...막상 멍석 깔아놓으면 하진 못할 거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ㅋㅋ
집은, 부동산은,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17년 즈음부터 모 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 역대급으로 폭등해버린 서울 아파트 값은.
나에게는 서드 임팩트 같은 사태였다. (이거 맞낰ㅋㅋ 에바 사실 잘 모릅니다 대충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야말로 날벼락. 아포칼립스 같은 재앙.
이 집값 폭등 사태로 내 평생 견지하던 인생관, 세계관, 삶의 가치관이 상당히 바뀌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동시대를 지났던 내 또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당시만 해도 직업을 업그레이드해서 연봉을 높이는 것이 내 평생의 숙원인 경제적 자유에 가까워진다고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스펙이나 직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시도들을 하기도 했고(기회비용 등 이것저것을 고려해 결과적으로 포기하기도 했지만), 여하간 공부나 시험 같은 걸로 내가 바라던 목표에 조금 더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왜냐면 태어나서 지금껏 시험으로 모든 스펙을 취득해 왔었으니까. 내게 학벌과 나쁘지 않은 직장을 준 건 시험이었으니까. 그걸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앞선 세대들처럼 어느 정도의 성취는 무난하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메타는 바뀌었고, 서서히 끓는 물 안의 개구리 같았던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자산 폭등기를 정통으로 쳐맞았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모든 자산이 미친 듯이 올랐다. 나는 벼락거지가 되었다.
직장이 나에게 나쁘지 않은 월급을 주고 있었음에도, 딱히 낭비하지 않고 저축을 상당히 쌓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리하여 비슷하게 벌지만 투자를 잘 한 또래들과 수억, 많게는 수십억의 자산 차이가 벌어져 버렸다.
당장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그랬다. 폭등에 탑승하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집을 살 생각으로, 그때까지 전세를 살며 차곡차곡 월급을 모으고 있던 나의 삶에도 재난이 닥쳐왔다.
부동산 폭등을 막고자 정부는 미친x 널 뛰듯 규제를 남발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시장에 부작용으로 다가왔다.
21년 말의 어느 날, 나는 살고 있던 전세 오피스텔에서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법이 바뀌어 다주택자가 되어버린 임대인의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임차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버티려면 버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임대인은 정말 만만치 않은 할머니였고, 나는 전재산에 가까운 전세금을 쥐고 있는 사나운 할매와 싸우며 그 오피스텔에 계속 눌러앉아 있을만큼 경험치가 풍부하지도 않았다.
그 즈음 처음으로 집을 보러 돌아다녔던 것 같다.
불과 2~3년 사이에 이미 미친듯이 폭등해버린 아파트값을 보며, 나는 그 가격을 안고 집을 살지, 아니면 월세로 돌려 후일을 도모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부동산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그걸 알았어야 했는데, 21년까지도 몰랐다. 다시 쓰면서도 스스로에게 빡이 치네.
18년을 전후해서, 리트를 볼 게 아니라 임장을 다녔어야 했다. 원하는 게 돈이었다면 그게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쫓았어야 했다. 메타가 바뀌고 있는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딴 데서 허우적대던 나는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만 했다.
가장 먼저 클래스 101의 부읽남 강의를 돈 주고 듣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십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리고 네이버 부동산을 매일매일 검색했다. 유투브를 닥치는대로 봤다. dsr을 계산했다. 당시에는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는 집값의 40% 정도밖에 대출이 나오지 않았다.
불과 2~3년 사이에 두 배, 세 배가 되어버린 집값을 보며 매일 절망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지금 돌아봐도 정말로 어둡고 힘든 시기였다. 나를 향한 분노가 넘치고 넘쳐 부모에게까지 흘러갔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으니 혼자 삼킨 부정적인 감정들에 마음이 새카맣게 썩어 들어갔다. 주변에는 이미 엄마와 함께 아파트를 한 채씩 장만한, 또는 증여받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이 주로 그랬다. 지역 출신이지만 돈 많은 집안 사람들도.
나는 부동산 강의를 듣고 혼자 임장을 다녔다.
21년 말이나 22년 초쯤,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영구임대가 잔뜩 끼어있는 낡은 주공아파트를 보러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이 차갑게 너덜너덜해진 채로 생각했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고.
가 본 적도 없는 동네를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갔다. 하루에 동대문구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다시 서대문구까지 간 적도 있다. 밤중에 은평구의 컴컴한 빌라촌을 가로지르고 언덕을 올라 신축 아파들들을 보고 온 적도 있다. 토요일에도, 평일에 퇴근하고도 멀미 나도록 밀리는 버스를 타고 하안동을 갔다. 될 리 없는 청약공고를 보고 내가 어딜 넣을 수 있는 지를 고민해보곤 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빨리 결정해야 했다. 살지, 말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거의 못 먹었고,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깊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마침 살고 있는 오피스텔 바로 뒷쪽에 붙은 빌딩이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땅 파는 소리, 건물 허무는 소리. 누워 있으면 굉음과 함께 바닥이 흔들렸다. 커튼 걷은적도 없는 낡디낡은 북향 통창의 틈으로 아마 먼지도 한가득 밀려들어왔겠지.
평온하게 쉴 내 공간이 세상에 한 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나 이사를 했다. 대학때 처음 들어갔던 자취방만큼이나 좁은 원룸으로. 당장 집을 사는 것보다 일단 몸 가볍게 보증금 낮은 월세로 들어가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22년 초에 집을 사지 않은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집값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에.
22년과 23년, 나는 조금은 진정된 마음으로 시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보러 다니던 낡은 주공 아파트들은 25년 말 초불장을 지나온 현재까지도 당시의 가격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내가 보던 많은 단지들이 당시의 최고점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이제는 거의 근접했지만)
물론 지켜만 봐서는 안됐다. 23년도, 늦어도 24년도에는 샀어야 했다. 당시 6억 중반대까지 떨어졌던 아파트는 25년말 현재 10억에 가까워지고 있다. 모하까지 보고 왔던 둔촌주공 49형이 8억에 당시 경쟁률이 2도 채 되지 않았는데 못 쓴건 말해 무엇하리.
여하간 24년에도 매달 1, 2곳은 임장을 다녔다. 노량진, 노들, 마곡, 우장산, 신길, 양평. 22년 초에는 닿지 못할 가격이었지만 호가가 조금 내리고 규제가 풀린 당시에는 어찌저찌 닿을 수도 있는 가격이었다. 물론 눈물겹게 월급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살 결단은 내지 못했다. 24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조금은 주춤거리고 있었거든. 시장이. 그리고 나는 일생일대의(한번도 집을 사 본 적이 없었으니) 결단을 계속 뒤로 미뤘다.
이미 분위기가 전환된 24년 하반기까지도 못 샀다면 25년 초에라도 샀었어야 했다. 하지만 도저히 전화기에 손이 가지 않았다. 마음은 불안해서 미칠것 같은데 부동산에 연락해 매물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큰일을, 오로지 혼자 저질러야 한다는 사실에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결정을 미루는 만큼 부동산은 계속 내 일상을 지배했다.
유투브, 블로그, 카페. 대부분의 부동산 인플루언서들을 꿰고 있었고 혼자 재건축 비례율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거나 적정가를 고민하며 엑셀을 돌려보거나 했다. 부동산 책을 읽어댔다. 여전히 무엇을 사야할지, 지금 사야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내내 결정을 못 내리다가 갑자기 집을 산 계기는 우습게도 청약 당첨이었다.
은평구의 모 브역대신평초 대단지. 하지만 그돈씨 가격이라 경쟁률이 5도 안되는 단지였다. 늘 그렇듯이 안 될 거라 생각하고 무지성 청약을 넣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경쟁률이 너무 낮아 쎄했다. 아니나다를까 당첨됐다. 그것도 다시는 될 수 없는 생애 최초로.
머리 터지게 고민했고, 결론적으로 계약하지 않았다. 나는 10년 넘게 부어온 청약 통장을 그렇게 날렸다.
청약 통장까지 분쇄돼 버렸는데 정신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25년 상반기 시장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뭐라도 사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슬슬 더워지는 초여름까지 임장을 다녔다.
두세 번의 계좌 거절을 겪고, 피말리는 시간들을 지나 겨우 가계약금을 밀어 넣었다. 전세를 낀 매물.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은 최선이었다.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고 나자 이주일 정도 목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10억도 훌쩍 넘는 물건을 사다니. 이것만으로도 큰일이었는데 불과 며칠 뒤에 627 대책이 터졌다. 덕분에 이 주 신물 올라올 걸 두 달을 고통받았다. 미친 짓을 한 거 아닌가, 1억 넘는 계약금을 날리고 파기해야 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었다. 계약서 도장 찍으러 가는 날에 미친것처럼 비바람이 쳐 불어서 불안한 마음이 더했다. 근데 두달 뒤 잔금 치는 날에는 또 날씨가 그렇게 화창할 수가 없더라고 ㅎㅎ
아무튼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등기권리증을 손에 쥐었다. 그 뒤로도 여전히 시장은 안정 기미가 보이지 않고, 트럼프는 미쳤고, 원화는 똥값이 되어가고 있고, 정부는 계속 규제 대책이니 공급 대책이니 헛지랄쌈을 싸먹고 있다. 그 돈을 들여서 집을 산 게 올바른 선택인지 아닌지도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부동산 외의 다른(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때도 죄책감을 덜 느낀다.
내가 선택한 것이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가격, 완벽한 매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개월 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했을까 몇차례 복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 다시 돌아가도 비슷한 선택을 하지 싶다. 그리고 최소한, 고통스러운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여전히 무주택자로 남아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여하간 부동산은 지난 몇년간 재난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거쳐 나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나는 아직도 20년 이전의 연도들을 보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대신 '그때 그럴 게 아니라 집을 샀어야 했는데' 또는 '비트코인이나 살걸'이라고 반사적으로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그때 진로 고민, 연애의 아픔, 회사나 인간관계에서의 트러블들 따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따위 고민보다 자산을 키우고 불리는 결정들이 훨씬 중요했다. 그걸 그때 훌륭하게 해내지 못했기에 오래 고통스러웠다. 여전히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고통은 시각을 바꿨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고 집을 산다는 결정도 못하고 있었을지도. 물론 그편이 더 행복했을수도 있겠지만^^...그런 세상을 가정하는 건 의미 없겠지. 코로나 이전의 시간선을 돌아보며 스스로 자책하는것 만큼이나.
아무튼 몇년간 겨울에 느껴 온 불안함과 근심은 대폭 줄어들었다. 비단 내가 산 것보다 훌쩍 오른 실거래가들이 찍히고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주변 단지대비 덜 오른 편이라 몇몇 주민들이 ㅎㄱㄴㄴ에서 한탄중^^...)
한장의 등기권리증이, 그걸 가지기까지 몇 년 간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경험으로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더 빨리 모으기 위해 가열차게 절약하고 있고, 월세가 더 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지만, 그래도 올 연말은 덜 춥다. 내 안에 뿌리내린 절망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마침내 움직였기 때문에.
아무튼 고생했다 2025년의 나.
올해 정말 큰거 한 건 해치웠으니, 내년에는 소중한 시간 더더욱 알차게 써서 가고싶은 길을 질주해야지.
ㅎㅎ 개 길게 썼네.
힘내자 내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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